세번째 이야기-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경험하는 치매공부
사람이 혼자 살기도 어렵지만 함께 사는 것도 참으로 힘든 일 임에 틀림 없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것도 힘들고, 부모가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것도 힘들고,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힘들다. 최근에는 직원들과 함께 사는 것 또한 힘겨워하고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자취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따로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40대 중반이후 다시 고향으로 귀촌해 작은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한집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께서 요양원 일을 많이 도와주시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고 있다. 함께 살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갈등이 생기고 깊어지면 견디기 어려운 힘든 점도 많다. 처음 갈등을 겪고 힘들 때는 만일 빚을 한도까지 가득채워 요양원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한 6개월을 넘지 않고 다시 도시로 돌아갔을 것이다. 요양원 운영상의 어려움도 많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 것 같다. 각자 주관이 뚜렷한 성격의 어머니와 아들이 일상의 사소한 것부터 부딪치니 수시로 짜증이 올라오다가 가끔씩 욱하고 올라오는 일탈의 욕구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발생한다. 전술 하였듯이 아마도 감당하기 쉽지 않았던 빚이 없었다면 욱하고 올라오는 순간을 참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그동안의 경험치가 쌓여서인지 최근에는 순간 순간의 갈등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다 객관적으로 보여 지고 있다. 그만큼 차분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많은 치매어르신을 돌보면서 치매증상에 대한 공부가 쌓여지면서 어머니와의 갈등상황 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머니와의 갈등이 단순히 가치관과 성격갈등이 아니라 신체노화와 함께 나타나는 감정과 인지 작용의 기능쇠퇴(치매)로 해석되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잡혀갔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한 초창기에는 어머니의 성격이 내가 생각한(?) 모습이 아니어서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함께 생활하면서 내가 생각한 긍정적인 성격 이면의 부정적인 성격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치매증상에 대입해서 어머니의 모습을 해석해 보면서 어머니의 생활모습이 새롭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한평생 살아온 어머니의 성격과 생활습관 그리고 가치관과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많았지만 점차로 신체노화와 함께 겪는 감정상태의 변화와 기억력과 판단력이 쇠퇴하면서 겪는 미세한 치매증상 또한 큰 요인 임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신체적 통증의 증가와 쇠약한 신체기능으로 인해 짜증과 우울감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로 인해 생각이 순식간에 극단적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자주 반복되었다. 그래서 의견 차이로 몇 번 말을 주고 받기 무섭게 어머니는 극도의 분노와 극단적인 말을 표출하셨다. 한바탕 큰소리로 다툰 후에는 분노와 우울감에 젖어서 아들에 대한 깊은 서운함을 표현했다. 그런데 나는 정작 그 일이 그렇게까지 어머니를 서운하게 하였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혼자서 성질을 부리곤 했다. 한편으로는 사건의 잘잘못을 가리고...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결할지 몰라 머리와 가슴에 천불이 났다. 그렇게 좌충우돌 하면서 점차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 상태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신체기능은 급격히 약화되고 질병의 통증도 심화되고 인지기능까지 저하되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그에 비례하여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점점 많아 진다. 그런데 필요해진 도움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익숙치 않고 알아서 해주기만 기대하다가 원하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니 극단적인 분노로 터져버리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본인이 하고 싶거나 해야 되는 일이 있다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기에 일정 정도 이상의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저하된 자존감은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먼저 아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커지자 스스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부정적이고 비현실적인 생각을 폭발적으로 키운다는 점이다. 외부적으로 공격하던 마음은 스스로까지 비난하고 공격하면서 우울감 또한 더 크게 키웠다. 사고력과 판단력의 약화가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검토하고 적절하게 걸러내지 못하게 되면서 예전 같으면 하지 않았을 극단적인 말을 하곤 하였다.
요양원의 치매어르신과 생활하면서 배우고 익힌 중요한 원칙이 어르신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 평가하거나, 논리적으로 가르쳐 행동수정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이해하여 수정하기에는 인지기능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대신에 문제행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의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그때그때 마다 문제행동을 수용하면서 최대한 빨리 갈등 상황을 진정시켜야 한다.
가령 어르신간 다툼이 생길 때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재빨리 대상자를 분리시켜 각자의 마음을 다독여주어 안정시키는데 집중해야 한다. 대신 치매어르신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건을 빨리 잊는 경우가 많아서 다시 일상으로 회복되기 쉽다. 이후 갈등을 줄여주는 환경조성이 필요할 땐 상황에 맞게 문제환경을 변경시켜 주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을 어머니와의 갈등에도 응용하면서 점차 갈등상황을 빨리 수습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머님의 서운함과 분노가 섣불리 개입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 때는 즉각 여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여동생들과 전화로 몇시간씩 또는 몇몇일 수다를 떨고 나면 어머님의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그 후에는 여동생들과 다시 통화하여 어머님의 속마음을 전해 듣고 사안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한후 어머님께 사과하거나 적절한 대처방법을 함께 연구하곤 하였다.
어르신과 함께 살면서 수시로 갈등을 겪게 되지만 동시에 삶에 대한 깊은 공부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미래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결과 지금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가야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명료하게 알게 된다. 아마도 어머니의 신체기능이 점점더 약화되듯 인지기능과 정서기능 또한 더더욱 쇠퇴해 갈 것이다. 그에따라 더 많은 어려움이 기다릴 것이다. 그때마다 공부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그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이정호 객원기자)
< 약력 > - 마인드풀 힐링아카데미 대표 - 서울불교대학원 대학교 심신통합치유교육전공 석사졸업 - 선문대학교 통합의학 대학원 자연치유 전공 박사과정 수료 - 국제사이버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외래교수 - 유안 정신과 의원 MBSR(스트레스관리 프로그램)및 이완프로그램 진행 - 군포 매트로병원 스트레스 클리닉 운영위원 - 아모레퍼시픽 감정노동 및 스트레스관리 프로그램 개발 및 교육 - 일산 알콜재활 전문병원 ‘마음챙김 스트레스 이완 프로그램’ 진행 - 동국대 일산병원 암환자를 위한 MBSR프로그램 진행 - 이화여대병원 직원스트레스관리 프로그램 진행 - 노인우울 및 심신통증완화 프로그램 개발 및 교육 - 경진주간보호센터 & 경진노인요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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